코로나에 무너진 말산업…氣 살릴 해법은 없는걸까

입력 2020-09-27 18:05   수정 2020-09-28 00:25

“우리는 힘들다는 소리를 할 때가 아니에요. 그 사람들 생각하면….”

한국마사회 직원은 수화기 너머로 한숨부터 쉬었다. 추석 맞이 사회공헌 활동 재원 8900만원을 임원들이 각출해 낸 데 대한 소감을 묻는 통화에서다. ‘신의 직장’이란 소리를 듣던 자신들도 71년 만에 전사적 휴업에 들어가면서 휴업수당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는 처지. 하지만 생업이 실종된 말산업 종사자들의 극심한 생활고에 비하면 자신들의 어려움은 내세울 게 못 된다는 것이다. “일감 자체가 없으니 기수, 조교사들은 무일푼이나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올해를 넘기면 정말 큰일 나겠다 싶습니다.”

코로나19로 말산업의 90%를 차지하는 경마가 멈추자 산업 생태계는 철저하게 무너졌다. 경주가 없고 상금도 사라지자 마주들은 투자를 줄이고 긴축에 들어갔다. 지난해 27%에 달했던 7월 제주 경주마 낙찰률은 올해 4%까지 하락했다. 말이 팔리지 않자 말 생산자들은 폐업 전선으로 몰리고 있다. 말을 타 돈을 벌던 기수들은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말산업이 창출하던 2만5000여 개의 일자리는 6개월 만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정부 곳간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작년 마사회는 1조1771억원을 정부에 세금으로 납부했다. 국산 축산물 수급·가격 안정 차원에서 축산발전기금 938억원도 냈다. 하지만 올해 예상 세금 납부액은 전년보다 87% 줄어든 1561억원. 마사회 이익금의 70%로 꾸려지는 축산발전기금은 한푼도 적립되지 않는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극심한 기근이 유독 한국에서만 더 심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해묵은 제도 때문이다. 미국 일본 영국 등 경마 선진국은 코로나19에도 경마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과 달리 온라인 마권 발행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경마장에 가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베팅하면 상금이 적립되고 성적에 따라 배분된다. 언택트(비대면) 베팅 문화가 일찍 정착한 덕에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완충할 수 있는 것이다.

온라인 발권이 국내에서 처음부터 막혔던 것은 아니다. 한국마사회법에는 온라인 발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이 없다. 1996년부터 2009년까지 13년간 이어졌던 온라인 발권은 법제처가 ‘마사회법 6조’의 마권 발행처를 경마장과 장외발권소로 한정하는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금지됐다. 불법 도박에 악용될 수 있다는 여론을 등에 업은 ‘온라인 마권 불가론’은 스마트폰 보급과 지문·안면 인식 발달을 외면한 채 11년째 정부의 입장으로 지속되고 있다.

합법적인 레저가 죽어가는 사이 불법 온라인 경마는 그야말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물론 세금 한푼 내지 않고서다. 경찰청 등에 따르면 국내 경마가 중단된 6개월간 해외 경마를 이용해 불법 도박을 하다가 폐쇄된 사이트만 1589곳에 달한다. 법이 그 법을 지키는 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그 법을 조롱하는 이들에게 파티를 열어주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것이다. 정말 해법은 없는 걸까.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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